사춘기인지 아닌지 알려면 눈빛을 보라고 한다. 눈에 화가 가득 차있으면 사춘기가 틀림없다고. 주인공 11살 남자아이 시릴은 사춘기 눈빛을 대변한다. 시릴의 바람은 자신을 고아원에 맡기고 오지 않는 아빠와 소중한 자전거를 찾는 것이다.
시릴은 고아원 안에서도 규칙을 지키지 않고 반항적이어서 선생님들이 다루기 힘이 드는 아이다. 하지만 애초에 어른(아빠)이 자녀를 책임졌다면 시릴이 그런 아이로 자랐을까? 아빠가 자기를 버리고 자전거마저 팔아버렸다는 것을 모르는 시릴은 살던 집을 찾아가고 결국엔 자기가 버려졌음을 알게 된다.
우연히 만난 착한 미용사 사만다는 시릴의 위탁모가 되어 주말에 시릴을 맡게 되는데, 사만다의 집에서도 시릴은 말썽만 부릴 뿐 사만다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다. 사춘기일 때는 자기 자녀도 감당이 안 되는 데 사만다의 시릴을 봐주고 아끼는 마음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감동이다.
시릴은 사만다의 도움으로 아빠를 만나게 되는데, 주말에 전화하고 연결되는 것만을 바라는 시릴이 아빠에게는 부담스럽다. 아빠는 시릴에게 돈이 없어 같이 살지 못한다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닌데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럽고 숨고 싶다. 시릴의 아빠는 돈을 모아서 나중에 다시 같이 살자는 거짓말조차 하지 않는다.
시릴은 동네 나쁜 형의 꼬임으로 도둑질을 하게 되고 그에 따른 금전적 피해보상까지 사만다가 떠안게 되면서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른다. 친아빠도 버린 시릴을 위탁모 사만다는 사랑으로 감싼다. 영화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자식을 버린 아빠는 나쁘고 그런 소년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사만다는 착하다’ 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무책임한 어른과 어른다운 어른 사이를 오가며 불편하다. 툭하면 자기자녀만 감싸안고 보호자가 없는 아이는 무시하는 영화 속 어른이 나는 아닌가. 오로지 자전거를 타며 속도를 낼때,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 소년은 자유로워 보인다. 마지막에 다친 몸으로 사만다에게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소년의 뒷모습에 희망을 걸어본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자녀와 부모가 같이 봤으면 좋겠다. 지구 반대쪽 사춘기소년도 우리 집과 비슷하다는 게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권사 오진이(중고등푸른교회 부장, 독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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