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님들은 ‘인연(因緣)’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시나요? 이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연이라는 말은 서양의 언어가 아닌, 동양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 해드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동양의 언어인 ‘인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영화에서는 전생에서 8천 겁(劫)의 인연이 쌓여야 부부가 된다고 인연을 설명합니다.
어린 시절 소꿉친구로 지내던 나영과 해성은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운동회 때 갑돌이와 갑순이를 함께한 사이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나영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갑작스럽게 끊어지고 맙니다. 나영은 어린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떠나고, 해성은 남겨진 자리에서 멀어지는 나영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렇게 12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20대가 된 나영은 뉴욕에서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고, 해성은 서울에서 평범한 공대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연히 SNS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모니터 너머로 매일 화상 통화를 하며 뜨겁게 재회합니다. 12년 전의 설렘이 다시 살아나고 서로를 향한 갈망이 커지지만, 뉴욕과 서울이라는 물리적 거리와 각자의 꿈은 너무나 완고했습니다. 결국 나영은 자신의 미래에 집중하기 위해 당분간 연락을 끊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각자의 삶으로 흩어집니다.
다시 12년이 흘러 30대가 된 두 사람. 나영은 뉴욕에서 작가인 남편 ‘아더'와 결혼하여 안정적인 삶을 꾸렸고, 해성은 직장인이 되어 여전히 한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 한편에는 여전히 서로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성은 용기를 내어 나영을 만나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24년 만에 실제로 마주 선 두 사람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애틋함과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그들은 뉴욕의 거리를 거닐며 “만약 네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수많은 ‘가정'을 나누며 지난 세월의 인연을 되새깁니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결코 ‘사랑의 도피'나 ‘관계의 전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밤, 나영의 남편 아더와 함께 셋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그들은 정중하고도 슬픈 작별을 준비합니다. 해성은 나영에게 이번 생의 인연은 여기까지임을 받아들이며, 다음 생(Past Lives)의 인연을 기약하며 택시에 오릅니다. 나영은 멀어지는 택시를 뒤로하고 남편 아더의 품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터뜨립니다. 8천 겁의 시간을 돌아 만난 소중한 인연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지 않은 채, 아름다운 ‘인연'의 마침표를 찍으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우리에게 ‘인연'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 영화가 설명하는 인연이란 수많은 우연이 겹쳐 비로소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존재는 나의 수많은 선택과 상대의 선택이 정교하게 맞물려 나타난 결과입니다. 만약 우리가 단 한 번이라도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소중한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요?
영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전생'이라는 단어를 빌려왔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경이로운 만남을 하나님의 ‘섭리'와 ‘이끄심'으로 고백합니다. 내 옆의 사람은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서 함께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옆 사람을 나와 관계 맺는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영화 속 나영과 해성은 인연이지만 관계의 단절을 경험합니다. 노라와 해성은 상대를 위한 노력과 희생의 선택보다는 자신과 현실에 맞는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연이라 해서 그 관계가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결국 인연이라는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과 희생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관계의 지속은 단순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깊이 살펴보는 수고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소중한 인연들을 향해 눈을 맞추고 그들의 삶을 살필 때, 우리의 인연은 비로소 끊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견고해질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3:18)
✎전도사 박진범(교육부, 틈새포플러스 담당)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