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이 영화의 핵심 세계관인 멀티버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외에도 서로 다른 물리 법칙이나 역사를 가진 무수한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가설로, 내가 했던 선택이나 우연에 의해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나'와 세계들이 무한히 펼쳐져 있다는 개념입니다.
교우님들은 영화를 보시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오늘 소개할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에올)를 보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좋은 영화를 보면 꼭 누군가와 감상평을 공유하고 싶어집니다. 혹시나 교우님들께서도 이 영화를 보신다면, 저에게 꼭 감상평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자 ‘에블린’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습니다. 무능해 보이는 남편 ‘웨이먼드’, 정체성 갈등으로 멀어진 딸 ‘조이’, 그리고 파산 위기를 몰고 온 까다로운 세무 조사까지. 에블린에게 인생은 치워도 끝이 없는 빨래 더미처럼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반복일 뿐입니다. 그러던 중, 국세청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남편 웨이먼드의 몸에 다른 우주(알파 우주)의 인격이 들어옵니다. 그는 자신을 ‘알파 웨이먼드'라고 소개하며, 모든 우주를 파괴하려는 거대한 악 ‘조부 투바키'에 맞서 에블린이 멀티버스를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버스 점프(Verse-jump)' 기술을 가르칩니다. 이는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나'의 능력을 빌려오는 기술로, 아주 확률이 낮은 기괴한 행동을 함으로써 의식을 해당 우주와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에블린은 처음에는 이 상황을 부정하지만, 조부 투바키의 수하들에게 공격받으며 어쩔 수 없이 버스 점프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그녀는 무술 고수인 자신, 가수인 자신, 요리사인 자신 등 다른 우주 속 수많은 ‘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죠. 모든 우주를 위협하는 ‘조부 투바키‘의 정체는 바로 또 다른 우주에서 한계치까지 버스 점프를 강요받다 자아가 조각나버린 딸 ‘조이'였습니다.
조부 투바키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모든 것을 알게 된 결과,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정보와 감정을 한곳에 때려 넣은 ‘에브리씽 베이글'을 만들어 냈고, 그 블랙홀 같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소멸하려 합니다. 에블린 또한 멀티버스를 여행하며 화려하게 성공한 다른 자아들을 목격합니다. 그에 비하면 현재의 자신은 ‘가장 실패한 버전'처럼 느껴지고, 그녀 역시 딸이 만든 허무의 베이글에 동조하며 무너져 내립니다. “어차피 다 의미 없는데 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그녀를 덮칩니다.
그때 에블린을 깨운 것은 무능하다고 무시했던 남편 웨이먼드의 ‘다정함'이었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운 싸움의 한복판에서 절규합니다. “제발 다정해집시다. 특히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더욱.” 에블린은 깨닫습니다. 웨이먼드의 다정함은 나약함이 아니라, 비정한 세상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가장 용기 있는 ‘투쟁'이었다는 사실을요. 이제 에블린은 무력이 아닌 ‘이해'와 ‘사랑'으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멀티버스의 능력을 동원해 적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들이 간절히 원하던 위로를 건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허무의 구멍으로 빠져들려는 딸 조이의 손을 붙잡으며 고백합니다. “우주가 아무리 넓고 우리가 작은 존재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너와 이 시끄러운 세탁소에 함께 있고 싶어.” 영화는 수만 가지의 가능성 중에서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향해 마음을 다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가장 가치 있음을 보여줍니다.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건네는 다정함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선포하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건네는 ‘다정함'은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됩니다. 허무주의와 냉소가 팽배한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라”(벧후 4:8a)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의 다정함'이라는 주님의 모습을 닮도록 요청합니다.
“원칙은 큰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엔 연민(자비)으로 충분하다” - 알베르 카뮈
✎전도사 박진범(교육부, 틈새포플러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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