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지음 | 민음사 펴냄 (총 3권)
2026-06-25 07:18:26
박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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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과 표지를 보고 비극적인 러브스토리가 아닐까 예상했지만, 이 소설은 단순한 러브스토리를 넘어 러시아의 사회문제와 철학, 종교 등을 아우르는 방대한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인물의 심리가 아주 섬세하고 생생하여, 마치 작가가 아닌 등장인물이 본인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이제 막 고전에 발을 들여놓은 새내기로서, 줄거리보다는 저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몇 장면을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는 청혼 거절의 상처를 안고 시골 영지로 도피한 레빈이 그곳에서 마주한 계절과 풍경의 묘사입니다. 톨스토이는 자연의 신비로운 변화를 직접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지, 자연을 통해 주시는 위로와 회복, 감동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는 레빈과 일꾼들의 풀베기하는 장면입니다.

일꾼들의 풀베기 작업에 참여한 지주 레빈은 노인의 능숙하고 일정한 리듬을 따라가다가 너무 고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복잡한 사유를 멈추게 되고, 육체의 무아지경 상태를 경험합니다. 굵은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으며 노동에 몰입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과 순수한 행복. 해가 저물고 지쳐있을 만도 한데, 남은 언덕의 풀을 더 베면 보드카가 나올 거라는 말에 환호하며 앞다투어 풀을 베던 젊은이들과 노인. 늦은 밤까지 이어진 작업 중에도 다 함께 어우러져 투박하고 신명 나게 부르던 노랫소리. 풀베기 시간을 통해 레빈은 삶의 만족과 평온은 자신의 지식과 교양, 복잡한 이론이 아닌 단순하고 소박한 삶 속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제 일상의 만족과 평안함도 세상의 복잡하고 계산적인 가치들이 아닌, 오직 주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살아갈 때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풀을 베다가도 눈앞에 노랑붓꽃의 열매를 보면 따서 나눠 먹고, 버섯을 발견할 때마다 매번 허리를 굽혀 줍고는 품속에 집어넣으며, “또 할멈에게 줄 선물이 생겼네.” 하던 노인의 모습에서, 제가 닮아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레빈의 영적 고뇌와 해답을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형의 죽음 후, 농사일에 희생하는 농민들을 보며,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하고, 땅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왜 저렇게 열심히 사는 것인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깊은 사색에 빠집니다. 해답을 얻기 위해 몇 년간 온갖 철학 이론을 공부하고도 답을 찾지 못하던 레빈은, 어느 날 일꾼 표도르와의 대화에서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쥐어짜서 자기 몫을 챙긴다는 여인숙 주인 키릴로프와 손해를 보면서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용서해준다는 농부 플라톤의 이야기였습니다.

 

(레 빈) “플라톤은 왜 사람들을 용서해주는가.”

(일꾼 표도르) “그분은 영혼을 위해 살지요. 그분은 하느님을 기억합니다. 누구나 알듯 진리에 따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거지요.”

 

이성적으로는 손해 보지 않는 행동이 합리적일지 몰라도, 누구든지 여인숙 주인의 행동은 악이고, 농부 플라톤의 행동은 선이라고 판단합니다. 사람들이 선을 지향하는 정신은 어디서 온 것인지 고민하며, 결국 창조주로부터 (선함을 가지도록) 사람이 창조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창조주(하느님) 존재의 확신이 당장 자신의 일상 속 행동을 극적으로 바꿔주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에 견고하게 뿌리내려 마음의 평안함을 유지해 주리라는 것.

삶의 모든 일에는 절대자의 뜻이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내야 할 명백한 의미와 힘이 되어준다는 결론을 맺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 주변 사람들, 농사일 등 자신의 모든 영역에서 선을 베풀며 하루하루 소중하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레빈을 상상해 봅니다.

 

안나-브론스키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로 유명해진 소설이지만, 저에게는 이상적인 시골 풍경과 삶을 진지하게 대하던 레빈의 매력을 알게 한 소설이었습니다.

마지막 레빈의 깨달음을 통해 저 또한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을 찾아가게 해준 <안나 카레니나>였습니다.

 

김경은 집사(10여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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