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돌봄 |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2026-06-25 07:26:58
박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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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우리 집 식구 모두는 성인이 되었다. 드디어 육아의 1막이 끝난 듯 했다. 힘들었지만 끝났다. 안도감과 함께 실패감이 사실 훨씬 컸지만 어쨌든 끝이다.

19년의 시간, 처음 나는 둘째의 손을 꼭 잡고 우아하게 산책을 했다. 우리는 꽃과 하늘을 이야기 했다. 그러다 아이의 학교 입학과 함께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다보니 나 혼자만 뛰고 있음을 발견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둘째 학년이 올라가면서 난위도 높은 뜀박질이 시작되었다. 앞구르기 몇 번, 뒤구르기 몇 번, 덤블링에 빽덤블링, 외줄타기를 해야 했고 마지막 전력질주가 끝나고 나서야 멈춰 설 수 있었다. 심신이 너덜너덜 해져있었다. 힘들 때마다 아이 돌봄과 관련된 책들을 읽어댔다. 때마다 아이에 대한 기도 제목을 식구들과 나눴다. 수많은 육아의 실전 지침들과 마음이 주는 안내가 분명했는데도 나의 돌봄은 이것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이 늘 불안했다. 그 불안의 원인이 내 욕심인 것을 알았지만 남들에겐 안 그런 척을 했다. ‘하나님이 계시잖아. 그렇게 뛰지 말라고! 뛰지 않아도 된다고하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서 경보를 했던 거다. ‘이건 안 뛰는 거지이렇게 스스로도 속였던 것 같다.

지인들과의 책모임 중 나의 경보와 유사할 것이 분명한 백조를 발견했다. 백조 몇 마리가 물 위에 떠 있는 이 책의 표지이야기다. 책을 보고 호수 아래 버둥거리는 백조의 발이 먼저 떠올랐는데 역시 경보백조는 유사했다. 책의 저자는 돌봄 관련 수많은 책을 읽고도 본인의 양육이 불안하고 공허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이상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상이 양가적이라 결국 자기모순에 빠졌던 탓이다. 경쟁에 능숙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자신만의 양육관과 교육철학을 단단히 견지해 세속에 휩쓸리지 않되 시대의 흐름에는 뒤처지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 미는 힘과 버티는 힘을 동시에 쓰는 삼각 자세를 취할 때처럼 힘들고 화가났다.”

 

나는 교회 모임에서 육아와 관련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 먼저 하나남의 자녀임을 매일 깨달아야 한다고, 오직 기도로 키워야 한다고, 나름의 육아 팁으로는 육아와 관련해서 자녀에 대해 극극극단적인 감사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위로의 말들을 들었다. 그러나 학원이냐 교회 수련회냐의 문제에서 조차 약하디 약한 불안한 부모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왔다, 기도의 시간과 세상의 시간이 나에게는 여전히 힘겨루기 장이였던 셈이다. 육아에 대한 나의 실패감은 이 힘겨루기에 있었음을 알았다.

 

이 책은 저자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 모음이지만 돌봄과 관련된 사회학 책에 가깝다. 저자의 육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이 책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했다. 그녀가 분석한 교육 현실과 돌봄 현실이 너무 촌철살인이라 장마다 밑줄 긋고 생각한 부분이 많았다.

 

사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내 노력으로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하겠다는 이 신념은 오랜 환상이자 오해다. 재능은 우연히 주어진 선물이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해줄 환경 또한 무작위로 배정된다,.... 행복은 내가 한 일의 결과이자 보상이라는 굳은 믿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취주의와 결과주의가 입시 위주의 교육 제도를 만들었고 모든 아이들이 단 하나의 성취를 위해 몰아지게 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책의 제목인 탐욕스러운 돌봄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분석은 우리의 모든 재능이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믿음 이외에도 내 힘으로 얻지 못하는 것’ ‘뜻밖의 선물을 꿈꾸는 소망과 희망이 제도나 구조로 들어와야 한다는 확신이 들도록 한다.

 

차별과 배제가 없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나눠보고 싶다. 최근 드라마에서 보여진 자존감을 외치는 초등 학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자존감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책은 내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결국 아이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를 바라는 것이라 했다. 자존감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내 아이 마음대로 선택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탐욕스러운 돌봄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를 바꾸어나가자는 일은 힘들고 멀게 만 느껴진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중요한 것은 아이뿐 아니라 노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늙고 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타인의 인정 속에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존감이 충만한 할아버지 할머니로 살게 하는 것이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최고의 방법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육아 돌봄에 대한 나의 실패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혹시 육아를 다시 시작한다면 실패감없이 잘할 수 있을까? 머뭇거리게 되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요된 돌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위로를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진심을 욕심이라 부르면 탐욕스럽지 않은 돌봄은 없다. 정선과 유난, 책임감과 욕심은 그 경계가 모호하고 기준도 저마다 다르기에 무결하고 이상적은 돌봄이라 설립 불가능하다. 그저 수많은 들의 돌봄이 있고 각자의 최선이 있다.”

 

이은주 집사(7여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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